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집안일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 하루는 언제나 바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랐습니다. 현모양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신사임당과 현대의 워킹맘들을 비교해 보며, 시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노력과 지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조선 시대의 워킹맘신사임당(1504-1551)은 흔히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는 조선 시대의 워킹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섯 아이의 어머니이자 뛰어난 예술가로서 시, 서예,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고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기도 했죠. 이미 그림과 시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특히 '초충도'그림은 지금까지도 한국 미술사에 남아있는 작품입니다. 아이를 돌보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 시대의 천재 실학자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깊은 고뇌와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정립했습니다.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지 유배 생활을 형벌이 아닌, 자신의 학문을 더 발전시킨 시간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사의재에서 시작1801년, 40세의 나이로 강진에 도착한 정약용은 처음에는 실의에 빠져 술로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모든 걸 잃고 낯선 곳에 던져진 기분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겨를을 얻었구나"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신을 다잡고 학문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세가 되던 해,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하는 방'으로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뜻하는 단어로 자신이 머물던 주막의 작은 방을 '사의재'라 이름 지었어요. 본격적인 자기 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이 두 거장의 사상을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고민하면서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1. 학문적 기반퇴계 이황은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을 건립하여 26년간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생활 그 자체가 학문"라고 말씀처럼 살았던 것 같습니다. 퇴계는 '심경' 연구를 통해 마음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매일 300번의 절을 하는 등 엄격한 자기 관리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교육철학은 수기치인을 핵심으로 삼았는데 참 와닿는 말 아닌가요? 자신을 수양하여 덕을 쌓은 후에 타인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로 개인적 수양에서 시작하여 국가적 차원의 실천으로 확장되는 체계적이었습니다. 자신을 먼저 닦고 나서 다른 이를 이끈다를 현재..

조선 시대의 왕실 재정 운영 방식은 현대의 국가 재정 시스템과는 상당히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 살림과 왕실 살림이 뒤섞인 듯한 구조부터 왕의 개인 금고라고 할 수 있는 내탕까지,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약간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조선 왕실 재정의 구조조선 시대의 왕실 재정은 크게 공재정과 사재정으로 나뉘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모호하고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나름의 합리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과 국가가 분리되지 않는 개념이었음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세종 27년 국용전제가 시행되면서 체계가 잡혔다고 해요. 국용 전제는 왕실과 국가의 재정을 구분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분리는 아니었어요. 왕실 경비의..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19대 왕으로, 391년부터 412년까지 재위하며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개토'라는 시호는 그가 영토를 크게 넓혔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정복 활동과 업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을 단순히 정복 군주로만 평가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더 깊은 통찰이 필요할까요? 실제 업적과 일부 오해에 대해 살펴보고 여러분에게도 광개토대왕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정복 활동과 영토 확장광개토대왕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의심할 여지없이 군사적 성과입니다. 그는 즉위 직후부터 적극적인 정복 활동을 펼쳤으며 남쪽으로는 백제를 압박하여 한강 이북 지역을 장악했고, 북쪽으로는 거란과 읍루(고대 만주 지역에 거주한 부족)를 정벌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로아노크 식민지 실종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1587년에 북아메리카 최초의 영국 식민지였던 로아노크 식민지의 주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불가사의한 일을 말합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명령으로 1585년 스페인과의 세력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새로운 영토 개척에 나섰고 이를 위해 월터 롤리 경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북아메리카 연안을 탐험하고 정착지를 조성하도록 했습니다. 로아노크 섬으로의 첫 번째 항해는 1584년에 이루어졌고 탐사대는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에 도착하여 원주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이 지역이 식민지 건설에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월터 롤리 경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려 이 지역을 '버지니아'(처녀..

중세 유럽은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던 시대로 이브가 원죄를 저질렀다는 '창세기' 구절에 따라 여성에 대한 공포와 불신이 드높던 시기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기본적 인권과 자유는 오늘날에 비해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에도 그대로 반영돼 중세의 문학작품에는 여성이 불안정하며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묘사됐습니다. 그러나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중세 유럽에서 펜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1. 침묵을 깨다당시 문학을 지배하던 여성 혐오사상에 과감히 맞선 최초 프랑스의 첫 여성문학가인 크리스틴 드 피장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숙녀들의 도시' 책의 저자였습니다. 작품 속에서 여성을 사..

오늘날 기업 경영의 세계에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경영 철학이 새롭게 적용시키면 어땠을까요?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이 2025년 신년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행동, 리더십이 절실합니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현대사회에서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오늘날 기업의 CEO였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업을 이끌어갈까요? 그의 역사적 업적과 리더십을 현대 경영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겠습니다.경영이순신 장군은 숫자에 강했으며 평소 군량미, 화약, 총통 등의 수량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중장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현대 경영에서 말하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합니다. CEO 이순신은 회사의 재무상태, 재고 현황, 시장 점유율 등을 실시..